넷플릭스와 캐나다의 CBC 방송국이 공동제작한 <빨간머리 앤>가 방영된다고 했을 때 기대가 컸다. (미국판 제목은 Anne with an E 이고, 캐나다에서는 그냥 Anne 이라고 한다.) 주말 아침마다 기다려서 보던 만화 <빨간머리 앤>은 물론, 메간 팔로우스가 주연한 1985년 판 <빨간머리 앤> TV 시리즈까지 모두 섭렵할 만큼 워낙 좋아하던 캐릭터와 이야기였다. 심지어 몇 년 전에 극장판 만화 <빨간머리 앤>을 개봉했을 때, 혼자 보러 극장에 갈 정도였다. 메간 팔로우스도 좋았지만, 포스터 이미지로 봤을 때 이번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은 에이미베스 맥널티는 아일랜드 태생의 진짜 빨간 머리 소녀였고, 주근깨나 체형이나 소설의 묘사와 너무도 부합하는 면이 많아 보였다. 마릴라 역의 제럴딘 제임스와 매튜 역의 R.H. 톰슨까지 분장과 의상까지 마친 극 중 모습은 외모 면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배역 선정이었다.
외모 면에서는 가히 완벽에 가까운 캐스팅이다.
이 장면 너무도 소설 같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취향의 문제인지는 몰라도 완전히 기대에 부합하지는 못했다. 암 선고를 받은 뒤 마약제조상으로 나선 중년의 교사를 주인공을 한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각본가 모이라 월리-베켓이 집필을 맡았다고 했을 때부터 작품의 톤이 달라질 것은 예상할 일이었다. 그래도 일부 장면이나 설정은 원작 그대로로도, 또 어느 정도 변형된 형태로도 충분히 공감할 만했다. 그녀가 처음 초록지붕 집으로 들어오던 길에 설렘 가득한 채 매튜와 이야기 나누던 순간이나, 매튜에게서 퍼프 소매 드레스를 선물받고 눈물을 흘리던 순간의 표정 같은 것은 소설이나 다른 작품에서 느꼈던, 내가 알던 앤의 모습을 충분히 다시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소설에서나 다른 버전에서는 앤의 이야기를 통해서나 전달되었던, 초록지붕 집 이전의 그녀의 전사(前史)는 그녀가 한번씩 그것을 연상시키는 사건을 겪을 때마다 그녀의 기억의 소환으로 화면 위에 생생하게 시각화되었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미처 생기기도 전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이미 자기 아이들이 많은 위탁 가정에 어린 나이부터 보모와 도우미처럼 일을 하면서 얻어 먹어야 했던 그녀의 어두운 과거는 강렬하고 잔혹한 화면으로 우리 앞에 그려졌다. 게다가 상상력이 풍부하고 그것을 화려한 언변으로 표현하던 그녀의 "다름"이 아마도 이유가 된 탓이었는지, 고아원에서도 다른 아이들에게서 왕따 취급을 당하며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 등이 추가되었다. 다른 후기들에서도 앤이 거의 ADHD와 PTSD가 있는 병리학적 징후를 농후하게 보이고 있고, 그것이 실제 작가의 의도인 것 같다고도 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빨간머리 앤>이 아니라 <폭풍의 언덕>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그녀의 전사는 어린 시절 고아라는 조건에서 겪은 시련으로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나에게 문제가 된 것은 그런 전사의 기술 방식보다 초록지붕 집에 온 이후에 앤과 그 주변인들이 겪는 사건들이 지나치게 센세이셔널리즘적인 방식으로 그려진 데 있다. 그건 그녀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표현하는 것이라 정당화하기엔, 사실 현재 미드들의 경향을 답습하는 서사인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더 많다. 마릴라가 앤을 도둑으로 오해해서 고아원으로 다시 돌려보내기로 해서 기차 역으로 보낸 뒤 잃어버렸던 브로치를 찾고 나서 매튜가 뒤늦게 앤을 되찾기 위해 달려 갔지만 기차를 놓치고, 그 사이 그녀가 역에서나 그 주변 도시에서 겪거나 당할 뻔한 거의 범죄에 가까운 일들이라든가, 고아원에서의 악몽을 다시 떠오르게 할 정도로 애본리의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다시금 당하게 된 따돌림의 행태나 그 강도, 농장을 거의 잃게 되는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매튜가 하려는 극단의 선택,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납득할 수 없는, 길버트 아버지의 너무도 때 이른 죽음과 그로 인해 길버트도 앤과 마찬가지로 고아의 처지가 되는 설정. 이런 설정들은 실제 작품에 들어있지 않았지만, 대본을 집필한 작가가 선택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80년대의 시청자들과는 또 다른 감각과 정서를 지닌 현대의 시청자들을 위한 나름의 동시대성을 부여하기 위한 설정이었던 것 같다. (사소하게는 다른 모든 또래 소녀들이 생리를 하는데 혼자만 생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루비가 우는 소리를 하자, 앤이 '이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 줄 수 있음 내 걸 주고 싶다.'라고 당당히 발언하는 장면도.) 다만 거의 자살을 감행하려 한 매튜의 선택에 대해서는, 그런 선택이 곧 작품 내에서 한 인물로서 그의 성격까지 드러내 주는 것인데, 고요하고 수줍음이 많긴 하지만 심지가 굳고 강단 있는 그의 성격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를 지나치게 나약하게 묘사한 듯한 그 전개는 단지 현재의 사회적인 현실과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그를 이용한 것만 같아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길버트와 앤의 관계가, 서로 드러내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연에 기반한 것이라는 것은 다른 판본들에서도 충분히 드러난다. 그런 그들의 관계의 특별함이 반드시 둘이 똑같은 고아로서 가지는 동질감에 기반을 해야만 설명이 되는 것인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굳이 길버트를 그런 처지로 만들었다. (길버트 역의 배우가 무척 귀여워서 그래도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이 많은 것 같은데, 난 원래 시리즈의 길버트에도 불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다.)
사실 이 드라마의 시련의 톤이 전체적으로 그렇다. 당신도 직접 겪어 보기 전엔 결코 알 수 없다,라는 것을 강변하는 양, 모든 인물들을 불행 속에 던져 놓으려는 느낌이고, 그 과정에서 수퍼히어로로서의 앤이 등장하는 것만 같다. 마을에서 화재를 처음으로 겪은 것이 아닐 터인데, 루비의 집 화재 현장에서, 문과 창문이 열리면 산소 공급으로 인해 화재가 더 커진다는 걸 그곳에 있는 마을 사람들 모두를 제외한 앤 혼자만 알고, 굳이 그걸 혼자서 닫으러 뛰어 들어가는 앤의 모습은 차라리 수퍼히어로물의 주인공에 가까워 보였다.
그리고 사회적인 동질감과 공감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싶은 의도가 있다면, 그 의도의 선함에 대해서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이런 접근 방식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불행을 경험하지 않고는 상대의 어려움과 불행에 공감할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사회 문제에 대한 공감과 접근과 해결을 불가능하게 하는 관점이 아닐까 싶은데, 이 드라마에서는 마치 그런 식으로 모두에게 접근하고만 있는 것 같다.
아니다, 그래도 백 보 양보해서 매튜와 길버트에게 원작과는 다른 시련을 주는 것까진 이해한다고 치자. 그런데 시즌 2를 염두에 둔 클리프행어 결말로 초록지붕 집을 털려고 하는 극단적 악역인 하숙집털이범들의 등장! 이건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다. 이쯤 되면 빨간머리 앤이라는 제목에 "막장판"이라는 부제가 붙어야 할 것 같다. 어느 온라인 평에서 이 드라마를 Anne of Breaking Bad 라고까지 표현한 것도 봤는데, 정말이지 이 설정은 앤이라는 인물과 애본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동원된 서사라기보다는 범죄적인 요소 없이는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없는 작가의 역량과 한계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들마저 교화시키는 것을 수퍼히어로 앤의 또 다른 초능력으로 넣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 가지는, 앤을 여성주의적 서사의 주인공으로 그리려는 의도는 충분히 납득하고 동의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초록지붕 집에 일손을 도와주러 온 소년 제리와 자주 대결 구도를 취하는 것처럼 만드는 것은, 말하자면, 오히려 계급 문제의 측면에서는 후퇴한 설정처럼 보인다. 그녀나 마릴라도 계급적으로 주변의 다른 인물들에 의해 무시당하고 주변화되기 일쑤인데, 그녀는 제리를 여러 면에서 무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리가 남성의 대표라서 그런 취급을 당하기엔, 그녀가 처한 세상에서 권력을 가지고 그것을 실제로 휘두르는 강한 남성들이 훨씬 더 많다. (특히 그녀의 담임 선생님 같은 인물) 그런 와중에 괜히 계급적으로 자신보다 약자인 제리를 애꿎은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그녀가 내적인 성장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그런 한계를 극복하는 서사를 넣기 위해 제리와의 관계를 그렇게 설정한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긴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인물 자체의 성격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기보다는, 서사적 장치를 위해 인물들을 짜 맞춰 배치한 것 같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뭐랄까, 빨간머리 앤은 소녀의 성장담인 동시에, 그로 인해 그녀를 둘러싼 세계도 함께 성장하고 변해가는 이야기이자, 그녀가 사랑한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넷플릭스 판 <앤>에서는 모두가 '앤'이라는 주인공 한 명을 위해 오직 도구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은 설정들이 많아서, 뭔지 모르게 불편하다.
여전히 앤을 내 안의 소녀성 속에 살고 있는 소녀로만 간직하려는, 나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스스로의 나이브함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해 이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제작이 결정된) 이 작품의 시즌2가 기다려지기보다는, 예전에 보던 시리즈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