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광은 결코 못 되지만 여행을 좋아한다. 살면서 두번 다시 가 보지 못할 낯선 곳의 풍광이 주는 놀라운 감흥도, 몇 번 가 봐서 익숙해졌어도 내가 살고 있지 않은 도시가 주는 소소한 신선함도 다 즐긴다. 하지만 사실 삶의 어느 시점에 이른 뒤부터는 시간 때문이든,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든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못 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 현실이 때론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에 좋아하게 된 배우가 (네, 오늘로써 연거푸 세 번째 그 분이 제 블로그 글에 등장합니다. ㅎㅎ)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을 듣고 왠지 이런 우울함이 일시적으로나마 해소되었다. 그건 바로, 그 배우가 어느 인터뷰에서인가, 여행을 좋아하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을 받고 이런 대답을 하는 걸 듣고서였다.
"여행, 막상 가면 좋아하긴 합니다. 그치만 뭔가 귀찮잖아요. 그래서 여행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그 분은 활자중독증이 있는 독서광이고, 야외 활동이라곤 전혀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공표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다. 일하지 않을 때 취미 활동으로 야외 스포츠 같은 건 즐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흠. 산책은 좋아하는데, 산책은 야외 스포츠가 아니죠?'라며 너털 웃음을 웃었다.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럼에도 (데뷔 후 20년 이상이 걸렸지만) 일본에서 현재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로 꾸준한 작품활동과 광고 촬영 등을 하는 그에게 결코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심지어 물욕도 별로 없어서 집에 물건도 별로 없다는 사람이라는데, 돈이 부족할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조차 '사람이 굳이 여행을 다녀야 하나요?' 라는 취지의 이런 발언을 하는 걸 들으니 왠지 내 현실도 괜찮게 느껴졌다. 그래, 여행기로 충분하지 않을 이유가 뭔가? 심지어 요즘은 영상물도 많은 걸! 내 발로 가 보지 않아도,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공간들도 많다고! ㅎㅎ
물론 이렇게 말하고 있음에도, 올해는 2월 말에 도쿄도 다녀오고, 비록 출장 때문이지만 토론토도 다녀온 만큼 한 해에 할 수 있을 만큼의 여행은 충분히 했다. 우울해 할 필요가 없다고- (음... 하지만 역시 죽기 전에 아일랜드만은 가 봐야 할 것 같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