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정의 끝이기도 하지만, 일본 여행 자체의 마지막 날이었다. 도쿄 시내에서 가기엔 하네다 공항이 훨씬 가까웠지만, 그 여정은 당연히 비행기표가 더 비쌌던 탓에 나는 얼마라도 절약하기 위해 나리타 공항 출국 비행기를 택했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숙소는 나리타 공항으로 곧장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는 우에노 역 근처로 잡았다. 호텔을 찾아 올 때 짐을 끌고 육교 계단을 내려 오느라 심하게 고생을 했던 전날 전철에서 내려서 호텔로 들어오면서 기차 타러 가는 동선을 미리 파악해 두었다. 나리타까지 가는 가장 값싼 열차는 공항까지 75분이 걸린다고 했고, 나의 비행기 출발 시간은 저녁 7시 반이었기 때문에, 2시간 전까지 도착할 요량으로 4시에서 4시 반 사이의 열차를 타기로 생각을 해 두었다. 그렇게 해서 오전 시간이 적당히 비어 있던 나는 체크아웃 하고 짐을 맡긴 뒤에 마트 쇼핑을 가기로 했다.
가마쿠라 가는 날 브런치를 함께 먹은 일본인 친구가 다행히 우에노 근처의 수퍼마켓을 알려줘서 우선 거길 갔다. 가는 도중에 전날 저녁을 함께 먹은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단 급한 원고 마무리는 했고, 그날 도쿄의 서점 거리인 진보초에 가서 책을 좀 사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본인 친구에게 추천을 받은 '타베로그 우동 부문' 1위 식당이 바로 진보초에 있어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데, 나도 혹시 시간이 괜찮으면 오겠냐고 했다. 점심 메뉴도 걱정이었고, 마지막날 혼자 점심 먹고 떠날 것도 조금 쓸쓸할 것 같았던 나는 신이 나서 쇼핑을 마치고 곧장 그리로 가겠노라 했다.
'마루에츠'라는 이름의 24시간 마트에서는 다행히 찾고 있던 오차즈케와 편의점에선 볼 수 없던 센베이가 다양하게 있었다. 다만 이미 짐가방은 가득 차 있었고, 짐을 넣을 수 있는 건 사실상 예비로 들고 간 배낭뿐이라 배낭에 가득 채울 만큼만 담고 더 이상 담지를 못했다. 더 큰 가방을 들고 와야 했던가,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약속한 점심 시간까지 가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얼른 챙겨서 지하철을 타고 진보초의 우동 집으로 갔다. 15분쯤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 순서가 왔을 때 친구는 아직 도착 전이었지만, 2명이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 놓은 덕분에, 나를 대기 줄에서도 또 대기로 빼 놓고 뒷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냈고, 친구가 오자 바로 우리를 좌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워낙 유명한 집이라 인터넷에 후기가 많았는데, 대부분 고기나 날계란이 들어간 메뉴를 많이들 먹은 것 같았지만, 나와 친구는 담백한 것을 원해서 뭔가 기본에 오뎅이 들어간 우동에 각각 원하는 튀김을 추가로 시켰다. (나는 새우, 친구는 야채.)
가격도 저렴했는데, 국물이 슴슴하니 맛있었다. 역시 일본인들이 선정한 음식점 순위를 보여주는 타베로그 우동 1위 집의 위엄은 이런 것인가,하며 감탄했다. 밖에 줄이 계속 늘어서 있어서 여유있게 먹고 노닥거릴 분위기는 아니라, 얼른 먹고 나왔다. 시간도 있고 하니 차나 한 잔 하고 가자고, 카페를 찾았다. 괜찮아 보이는 서점 위의 카페가 있길래 들어갔는데, 분위기는 좋았으나, 완전 북카페. 모두들 조용히 공부하는 분위기라 우리가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일본 카페들은 잘못 들어가면 담배 냄새도 심한 것이 걱정이었는데, 지나다 보니 지하1층으로 내려가면 있는 찻집이 보였다. 일단 들어가 보고 결정하자고 내려 갔는데, 금연인 데다 분위기가 밝고 깨끗했다. 메뉴판을 보니, 커피가 전혀 없는 순수한 찻집. 우리 둘 다 차도 괜찮아서, 그냥 거기서 마시기로 했다. 나는 얼그레이를 시키고 친구는 우유를 추가해서 먹는 밀크티를 시켰는데, 우유를 넉넉히 줘서 나도 중간중간 타 먹었다. ㅎ
그렇게 친구와 마주 앉아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가까운 친구였지만, 외국에서 만나기는 또 처음이었던지라, 신기하기도 재미있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웠던 만남을 뒤로 하고 비행기를 타러 가기 위해 헤어져 호텔에 돌아갔다. 짐을 찾아 미리 시간을 확인했던 공항 철도를 타고, 나리타에 도착했다. 모든 출국 절차를 마치고 게이트 근처에 도착해 공항에서 일본을 떠나기 전 나의 의례와도 같은 생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오늘은 여유가 있어 칵테일도 한 잔 더. ㅎ)
처음으로 떠났던 혼자만의 긴 해외여행이 이제는 꿈결과도 같지만, 돌아와 보니 역시 다녀오길 잘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쓸쓸하기도 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지 못하는 나의 소심함이 여전히 문제라고 느꼈지만, 만으로 마흔 되는 해에 아무 계획 없이 떠났던 이 공교로운 여행은 쉬이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내가 가서 좋았던 곳들을 다음엔 친구들과 한번 더 가보고 싶기는 하다. 특히, 나에겐 여전히 인생 여행지인 가마쿠라와 그곳에서 묵었던 호텔은 반드시 다시 돌아가 보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2년을 방치했던 여행기에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며, 이 글을 이제 진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