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긴 후기를 쓰고 싶었지만, 그러려다 보니 계속 미루게 돼서 일단 지금은 간단히 쓰고, 그건 다음 기회에-
지난해 9월, 여름도 다 지난 마당에 난데없이 (내 기준으로는) 납량물에 해당하는 드라마 <손 the guest>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좋아하지만 자주 보기 힘든 여배우의 연기 변신이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는 스릴러의 형식으로 미스테리를 풀어내는 솜씨도 훌륭했고, 각각의 주요인물들의 매력도 충분해서 대단히 흡인력이 있었다.
게다가 약자들의 마음 속을 파고 들어 그들 사이의 균열과 대립을 일으키는 “손”이라는 존재의 악마성의 근원을,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이거나, 역사적 맥락이 없는 절대악으로 취급하는 대신, 한국의 역사와 정치적 맥락과 연결된 권력층의 탐욕으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그런 근원에 대한 추적이 그 자체로 그다지 신선한 접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손 더 게스트>의 접근방식은 분명 설득력이 있으면서도 날카로웠다. 그리고 세 주인공 사이의 우정을 통해 약자들의 연대를 그려낸 점도 마음을 울린 수작이었다.
어쩌면 한 사회의 최상층에서 시작된 사회악 혹은 사회의 적폐가 “빙의”라는 형태로 그 기저의 사람들에게로 흘러갔을 때, 그 공격의 대상이 그것을 일으킨 근원이 아닌 자기 주변 혹은 비슷한 사람들로 향하게 되는 방식은 최근 넷플릭스의 <킹덤>에서 조선의 권력 다툼과 백성들의 굶주림에 대한 은유로 ‘좀비’를 차용한 것과도 유사해 보인다. 둘을 비교해도 <킹덤>의 결말이 이직 나지 않은 현재로서는 난 <손 더 게스트>를 더 좋은 작품으로 꼽겠지만.
다만 작품의 훌륭함과는 별개로 씁쓸함이 남았던 것은, 드라마 속 상황과 실제 현실의 간극이 너무 작다 보니, 대체 이 사회는 언제까지 스스로의 책임은 방기하면서, 소수자와 약자들의 연대에 기대 그 생명을 연장해 가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체제가 보호해주지 않는 약자들이 서로에게라도 기대가면서 연대의 고리를 만드는 과정을 어찌 응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이나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같은 작품에서도 보았지만, 실제로 많은 허구와 현실의 그런 연대들이 가진 힘과 아름다움에서 우리는 다시 힘을 얻고 일말의 희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약자들 간의 연대나 인간의 존엄성을 택하는 것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수많은 유사한 서사나 현실의 상황을 보며, 우리가 대체 언제까지 자신의 몫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새로운 체제를 고민하고 창안하지 않는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연명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것들이 언제까지 고귀한 개인의 어려운 선택으로 남아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드라마의 결말은 아름다웠지만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