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굳이 따지자면, 나는 극장이 반드시 조용하고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편이다. 어떤 영화들은 다수의 관객이 함께 관람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극장이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조금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울고 웃으며 더 즐겁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충분히 그런 역할을 소화하고 있고, 거기선 그들만의 규칙이 적용되니 그것도 그것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영화전용관으로 분류되는 극장을 굳이 택해서 영화를 갈 때는 그래도 일정한 기대가 있는 법인데, 그런 극장에서 비매너 관객을 만나면 당황하게 된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 연달아 두 번이나 예술영화 보러 가서 상상초월 비매너 관객을 접했다. (사실 비매너를 넘어선 몰상식 관객이었다.)

첫 번째는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보러 갔을 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재미있었던 일 하나를 우선 언급하고 가겠다. 그건 바로 영화가 시작되고 10분이나 지났을까 싶은 장면에서 친구 얼굴을 발견했다는 것! 딱히 중요한 인물이나 대사가 있는 인물은 아니었고, 그냥 영화 초반에 뉴욕공립도서관 본관 열람실을 찍은 장면에서 책상에 앉아 작업하는 여러 사람들 가운데 뉴욕에 사는 친구의 얼굴이 딱! 보이는 거다. 물론 그렇게 딱 알아 볼 수 있었던 건 그 친구가 다소 독특한 스타일을 가진 덕이긴 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다가 친구의 얼굴을 발견하다니 정말 재미있고 신기했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아주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나서 시작됐다. 어떤 장년의 남성 관객분이 우리 뒷줄에 앉아 있었는데, 짐작컨대 스스로 택해서 극장에 오신 건 아니고, 아내분이 보자고 해서 함께 온 듯했다. 영화 초반에 음성을 충분히 낮추지 않은 상태로 일행과 대화를 나누던 것이 아마도 불길한 전조였던 것 같다. 일단 뭐, 워낙 긴 영화다 보니 다른 관객들도 일부 화장실을 다녀오긴 해서 그분이 화장실을 다녀온 것은 그러거니 했다.

하지만 그분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고 발로 의자를 차는 건 물론이고, 정말 상상할 수 있는 갖가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졸음을 쫓기 위함이었는지 허벅지를 손으로 탁탁 치는 소리, 봉지를 바스락거리며 “한참 동안” 뭔가를 꺼내는 소리, 이로 깨물어 사탕 먹는 소리, 휴대폰 벨소리, 문자 전송하는 키패드 소리, 그리고, 정말 믿을 수 없었지만... 큰소리로 트림을 세 차례나 하고 말았다. ㅜㅜ 이 모든 것의 끔찍스러운 조합 위에,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인물의 마지막 대사가 끝나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막 나오는 찰나에, “이게 끝이야?”라는 한 마디를 끝내 덧붙였다. 영화의 여운을 간직하며 차분히 앉아 있고 싶었던 나의 마지막 실낱같은 노력에 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찬물을 끼얹은 한 마디였다.

하... 극장에서 참 여러 가지 일을 겪기도 하고, 난 사실 불편을 끼칠 의도는 없지만 웃음소리가 다소 큰 편이라 극장에서 다른 관객에게 웃음소리를 낮춰달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영화관의 소음은 보통 블록버스터 영화나 대중적인 오락 영화를 볼 때 겪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설마 아트하우스 영화를 보러 가서 상식적인 관객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비매너 행동 10종세트쯤을 경험하고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터라, 정말 더 충격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 남성을 굳이 극장에 함께 모시고 온 그분의 아내마저 원망스러웠다, 진심.


이것은 작년 말의 일. 지난 주말에 <필름클럽> 팟캐스트에서 <로마>의 음향적 실험성에 대한 최다은 PD님의 찬사 끝에 그 영화는 가급적 극장, 그 중에서도 음향시설이 좋은 극장에서 경험해 보아야 한다는 강조의 말씀에 "영업당"해, 나는 오랫동안 망설였던 파주 명필름아트센터 행을 감행한다. 그곳에서 다행히 주말에 <로마>를 한 차례 정도 상영을 하고 있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영화를 예매했고, 호젓한 극장에 들어서며 설렜다.

그리고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를 경험하러 간 그곳에서 나는 60대 여성관객 일일드라마 시청 리액션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체험하게 된다. 일행과 나란히 앉은 그 여성분은 나의 바로 옆자리 관객이었다. 일단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옆자리 일행에게 귓속말 코스프레를 한 목청 쩌렁쩌렁 코멘터리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분명 자막에 다 나와서 읽고 있는 내용이나 눈으로 보고 있는 장면을 굳이 당신 입으로 다시 되뇌어 주셨다. 그런 와중에 상영관에서 음식물 섭취가 허용되지 않는 그 극장에서 간식으로 챙겨온 듯한 지퍼백에 든 무언가를 꺼내서 일행과 나눠먹기까지 했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아이구 어떡해 쯧쯧쯧” 등의 감탄사 무한반복이 터져 나온 것은 차라리 애교였다.

심지어 마지막 끝나는 장면에 영화 제목 뜨자, 다른 관객들은 조용히 앉아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며 크레딧 올라가는 거 보는 와중에 “끝! 근데 이게 왜 로마야?”라는 말을 굳이 덧붙이더니 낄낄대고 웃기까지 하는 거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하늘 멀리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몇 번 잡히는데, “저게 로마행 비행기인가 보네.”라는 코멘터리는 그 후로도 계속됐다. 왜 차라리 빨리 나가지도 않나 싶을 정도.

그리고 물론 극장 밖에 나와서까지도 그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던 것 같은 일행분에게 “이 영화는 대체 왜 보자고 한 거야? 내가 보다보다 이렇게 웃기는 영화는 처음 봤다.”라며 계속 원망과 실소가 섞인 코멘터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봐야 했다. 슬프게도 <로마>는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까지 덮어버리던 그 60대 여성관객의 리얼타임 코멘터리로 기억될 영화일 거 같다.

아... 극장은 공공장소고, 여러 가지 목적과 의도와 취향을 가진 이들이 불가피하게 함께 영화를 보는 공간이니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을 수도 있고 각자의 반응이 다양할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정말 가끔은 필터를 거쳐서들 보러 왔으면 싶을 때가 있긴 하다.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