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말이지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한, 최소한 초등학생 때부터 지적도 많이 받고, 스스로 의식도 많이 했던 나의 나쁜 습관 가운데 하나는 ‘벼락치기’였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매일 일정 시간 숙제를 하고, 복습이나 예습까지 마친다는, 마치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유니콘이나 용과 같은 엄친아와 엄친딸들에 관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지만, 나는 항상, 줄기차게 벼락치기를 해 왔고, 지금까지도 근본적으로 고치지는 못했다. 그것은 과제를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또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TV 프로그램을 볼 때도 계속 나타나는 지독한 습관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책이 있어도 매일 일정 시간 동안만, 그것을 끊어서 읽는 사람은 일상의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지만, 재미있는 것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끝을 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람은, 벼락치기를 고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히 과제를 할 때 이 습관이 얼마나 지독하게 해로운 것인지는 매번 눈앞에 일이 닥쳤을 때마다 느꼈지만, 결국 항상 발등의 불을 간신히 끄고 한숨 돌린 후엔 그 악몽 같은 기억을 깡그리 잊는 것으로 마무리하면서, 이 습관은 지금까지도 내 몸에 붙어 있다.
사실 이것이 내가 호흡이 긴 작업을 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시간을 잘 안배해서 긴 기간 동안 일정하게 해온 작업이 쌓여서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게 하기엔 나는 벼락치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물론 이런 나 자신을 잘 아는 탓 혹은 덕에, 어찌 보면 그냥 단기간에 휘몰아쳐서 마치고 나면 끝나는 일을 주로 맡게 되고, 그렇게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나도 긴 호흡의 일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지독한 악습과 결별하기 위해 좀 더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 보기는 한다. 실행까지의 거리가 얼마일까,는 별개의 문제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