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도시에 살 때,
가끔 우스운 일들을 겪는 경우가 있다.
사실 내가 그 일을 직접 '겪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겪고 있는 당사자를 보며,
혹은 어떤 일을 저지르고 있는 어떤 사람을 보며
내가 어느 새 감정적으로 동화되거나
내 감정이 역류(?)하며 괜히 황당해하는 경우가 있다.
상황 1.
광화문 교보.
책을 골라서 계산하기 위해 줄을 섰다.
내 뒤에 있던 어떤 아저씨,
수염을 기르고, 이상한 개량한복 스타일의 옷차림을 한
어떤 아저씨가 다른 쪽 줄에 서서 계산을 하기 위해
책을 내밀면서 점원 아가씨에게 말한다.
그것도,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집요하게 몇 번을 거듭거듭 말하더라.
그냥 허탈한 웃음만으로 일관하며
별 대꾸를 하지 않던 아가씨를 보며,
괜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 얼마나 짜증날까,
싶은 기분.
저런 일이 직업이면, 정말 짜증나겠구나,
싶은 기분.
뭐, 사람을 미리 다 걸러서 만나가며 일할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시피 하겠지만,
저런 상놈이 와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할 때,
정말 내가 이런 일 해야 되나 싶은 게,
너무 짜증날 거 같다 싶은 마음에
내가 막 짜증이 났다.
상황 2.
저녁 7시 무렵, 붐비는 2호선.
앉아 있던 내 옆자리가 비자
올블랙으로 꽤나 멋을 낸
어떤 젊은 아가씨가 앉는다.
그런데 자리에 앉더니
핸드폰으로 맞고를 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받아
통화를 하기 시작한다.
지하철에서 만나기로 한 모양이다.
자리에 앉았다면서
자기는 서 있으면 늘 바로 자리가 난다며,
운이 정말 좋다고 자랑을 한다.
그리고는 자기 자리가
몇호차 몇번째 문으로 들어와
어느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몇번째 자리인지까지를
아주 상세히 가르쳐준다.
그래놓고 한다는 소리가...
내 귀를 의심했다. -_-;
아니, 무슨 전쟁통에 헤어져서 각자 피난을 가야 하게 되어서
언제 어떻게 살아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의 켜켜 속에서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불투명한 그런 상황도 아니고,
지하철 몇 호차, 몇번째 문에서 어느 방향 몇번째 자리인지까지
시시콜콜 다 알려줘 놓고, '오빠, 우리 운명을 믿자'는
대체 뭐냐-_-;;;;
아 놔- 역겹고 짜증나서 죽을 뻔했다.
그래 놓고는 지하철에서 '대단하신 재회'를 하고 나서
그 남자친구가, 우리 어디 가서 뭐 먹을까? 하는 데다 대고
나 배 안 고픈데, 이런다.
무슨 운명이 그래?
암튼 나랑 상관도 없는데도,
이런 일들 보면 막 그냥 짜증이 나서
당췌 견딜 수가 없다니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