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드 님 최근 글을 읽어 보니 지금 쓰고 계신 닉네임을 꽤 오랫동안 써오신 모양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꽤 늦게 블로깅이나 싸이계에 입문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어쩌면 나만의 착각인지도 ㅋㅋ)
그 전부터도 가끔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일이 있을 때는 지금의 닉네임을 써 왔다.
그 전에 잠시동안 "세모"나 "monologue" 같은 걸 쓰기도 했었으나,
"파피루스"를 발견(?)한 이후로는 이걸로 완전히 정착했다.
"파피루스"는 비교적 많이 알려진 단어인 터라 사실
이메일 계정이나 인터넷 아이디로 신청했을 때는 좌절당하기 일쑤였는데,
블로그 도메인으로 신청했을 때 별 어려움 없이 바로 통과돼서 참 기뻤었다. :D
많지는 않지만 왜 이런 닉네임을 쓰게 됐냐는 질문을 이따금 받을 때가 있는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뭐 대단한 계기랄 만한 것은 없다.
사실 "파피루스"란 내가 교환학생 갔던 시절, 내가 좋아해서 즐겨갔던 편지지 가게 이름이었다.
자전거가 나의 지인인 벨로의 삶에 미치는 절대적 영향에 비하면야
그 편지지 가게가 내 삶에 미친 영향이란 미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내 오랜 *종이 편력*을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나는 참 어려서부터 종이로 된 많은 것들을 좋아했다.
그 첫번째는 물론 책이었고,
때로는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또 글을 쓰는 게 좋아서,
스케치북이나 온갖 공책, 수첩, 메모지, 편지지, 카드 따위를
끝없이 사들이고 사 모았다.
요즘은 "있는 것 일단 다 쓰고-주의"로 살짝 돌아서긴 했지만
좋아하는 문구점에 가서 유혹을 뿌리치기란 참 쉽지가 않다.
카드도 매번 누구 생일 돼서 급하게 비싼 돈 주고 사지 말고
마음에 드는 게 눈에 띄면 미리 사 놓는다 하며 사놓고는
어디다 넣어뒀는지 찾지 못해서 번번이 새로 산다. -_-
그리고 생일이 지난 며칠 뒤 서랍 속 어느 비닐 뭉치에서 찾곤 한다.
그리고 맘에 쏙 드는 특이한 카드가 있으면 심지어 두 장씩 사기도 한다.
한 장만 사면 써서 다른 사람 주고 난 뒤 나한테는 결국 남지 않으니까
예쁜 카드 나도 한 장 갖고 있고 싶어서.
못 말린다. -_-
우리 나라 문구류가 예쁘긴 하지만
파피루스라는 이름의 그 편지지 가게가 나에게 주었던 즐거움은
그냥 예쁜 편지지나 공책을 보는 즐거움 이상이었다.
특이한 수제품 카드나 특이한 재질의 종이를 쓴 깔끔한 편지지나 공책들,
때로는 앨범이나 액자들 보고 한두 개씩 사다가
친구들에게 편지나 카드 한 장씩 쓸 때의 즐거움은
다른 데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곳에 살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 편지지 가게는 꽤나 큰 전국규모의 체인이었던지라
저번에 미국에 가서 다른 지역의 가게들에도 들러봤지만
역시 그 경험은 똑같지가 않았다.
실제로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어느 걸 고르면 좋을지 모를 정도로 손이 가는 카드가 많아서
어쩔 줄 몰랐던 그 때에 비하면, 마음 먹고 사려고 해도
썩 마음에 드는 것도 없었고,
대형 몰 안에 있던 그 가게는 다소 평범해 보였다.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던 주말 오후,
무심히 기숙사가 있던 언덕을 걸어내려와
이런저런 가게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북적이는 거리를 지나
조금은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있던 내 기억 속의 그 작은 가게는
역시 그 풍경 속에서나 살아있는 그런 곳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파피루스"를 닉네임으로 선택했을 때는, 무엇보다,
그 공간에 대한 남다른 향수만큼이나
"종이" 혹은 "태초의(?) 종이"라는 그 뜻 자체가 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나
새로운 백지이기도 하고,
온갖 낙서들이 가득 메워진 날깃날깃해진 종이이기도 하고,
그리운 이에게 보낸 편지이기도 하고,
낯설고 신기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책이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이런 포스팅이 내가 "여성스럽다"는 오해를 사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저 나긋나긋하고 말랑말랑한 말투를 보라지!
나답지 않아~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