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하다.
정부는 아무런 노력도, 시도도 하지 않은 채
결국 김선일씨가 피살되도록 방관했던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뉴스를 보는 나의 느낌이 묘한 것은
뉴스보도가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의
반인륜적 행위로 인해
분노와 충격에 휩싸인 정치권의 반응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닐 터이다.
그러나 며칠 전 김선일 씨 피랍 사건을 접하고 발표했던,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될 거라 했던,
미국의 정부 성명만큼이나 그 보도의 뉘앙스는 우스웠다.
미국이란 나라는 자신들이
전쟁과 무관한,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향해
폭탄을 투하하고 폭격을 했는지 잊었던가.
정치권은, 그 반인륜적 행위를 기어이 자행하게 했던
자신들의 책임은 눈꼽만치도 느끼지 못하는가.
나 역시 그를 기어이 죽음으로 몰아넣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이 분노는, 굳이 따지자면,
어떤 식으로든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자행하는
모든 형태의 폭력에 대한 분노와 회의다.
그래서 이 죽음이 또 다른 죽음을,
이미 하나의 분노가 야기한 분노가, 또다른 분노를 낳지는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물론 지금 사랑하는 아들, 형제, 친구를 잃은 가족, 친지들에게는
배불러터진 소리일 터이다.
내 가족이, 내 친구가 죽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평정심을 유지한 발언을 할 수 있을 거라고들 여길 것이다.
아마 그런 면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라크전이 근본적으로는 9.11사태 이후
미국이 아랍권의 국가들에 느낀 적개심을
그럴 듯한 명분으로 포장하여
-사실 그렇게 그럴 듯하지도 않다. 매우 어설프다.-
자신들의 복수(?)를 정당화한 것이라 볼 때,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분노와 폭력의 연쇄를
어떻게든 끊어야 할 것이라 여긴다.
정부는 이제라도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기를 바란다.
김선일 씨 가족이 느끼는 분노를
또 다른 살육으로
정부가 대신 풀어줄 수는 없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 파병한 군대가
실제로 인명을 살해하는 데 가담하느냐 마느냐,
라는 사실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미 그 전쟁에 발을 들여놓는 한,
살육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결코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낀다면
반인륜적 테러리스트를 향한 국민의 분노를
자신들을 합리화할 명분으로 삼아
파병을 하겠다는 헛소리 따위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9시 뉴스를 통해 다시 한 번 김선일씨가 절규하던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난다.
그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 공포가 내 온몸을 관통해 들어와서 마음이 아팠다.
부디, 그의 고통을 통해
지금 바그다드에서 아이들을 품고 잠든 사람들의 일상이
늘 그러하리란 것을 조금은 느꼈으면 좋겠다.
테러리스트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운운하기 이전에
우리의 폭력성이 다시 "무고한" 어떤 생명들을 해치는
그런 일들을 자행하는 것이 아닌지,
한 번쯤, 그가 느꼈을 고통을 통해 느끼고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대범하신 노무현씨께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