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사진을 찾기 위해 imdb 사이트를 뒤지면서 발견한
어떤 사람의 관람 후기 제목이었다.
나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영화, 책, 음악, 작품들이 있다.
다른 누가 뭐래도 -특히 전문가들의 어떤 소견에도 아랑곳 않고-
나에게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도 재미있고, 슬프고, 기쁘고, 의미있는.
"The Object of My Affection"이 나에게는 그런 영화였다.
읽어본 일은 없는데,
스티븐 매컬리라고 하는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가 개봉된다고 할 때 미국인들은 꽤 기대를 했다고 한다.
아마도 상당한 기대를 품게할 만한 작품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소설 원작의 영화들이 많은 경우 그렇듯,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작품성에 실망을 한 사람들, 비평가들이 많아서
워낙 혹평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소설로도 읽은 적 없고,
그다지 평이 좋지도 않았던 이 영화를 굳이 보았던 것은
Paul Rudd 라는 배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프렌즈"를 봤던 사람들이라면
마지막에 피비와 결혼한 남자로 기억을 하기도 할 것이고,
영화 "클루리스"를 봤다면
앨리샤 실버스톤의 남자친구 역할로 나왔던 인물을
혹시라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크게 비중있는 역할을 한 적도 없고,
대단한 명성도 없는 배우였는데 어쨌든 난
"클루리스"를 보면서, 선량한 느낌에 뽀샤시한 피부가 눈에 띄던
이 *어여쁜* 남자배우에게 확 반해 버렸었다. ㅋㅋ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이미 영화가 완전 망해서 내린 다음에-
이 영화의 포스터인지를 봤고, 그 배우가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비디오로 빌려봤던 거 같다.
이상하게도 맨 처음 어디서 어떻게 봤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보고 나서 와- 이런 인간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니, 하며
정말 놀라면서도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는 왜 그 지경으로 혹평을 받은 것일까,
라는 의문을 품었던 것도 같고.
뭐 어찌 보면 이 영화에 내가 반했던 것은
이 작품이 담아내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우정, 남녀관계, 가족관계였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영화 자체의 전반적인 짜임이나 완성도보다는
아마도 소설 자체가 그려냈을 신선한 인간관계의 가능성에 좀더
비중을 맞추고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관계의 가능성을 보게 할 만큼,
나로서는 이 작품에서 보여진 배우들의 연기가 꽤 설득력 있었던 것 같은데
기대가 높았던 관객이나 비평가들에게는 역부족이었던 것일까.
어쨌든 남자친구 빈스의 아이를 가지게 된 니나가
임신 사실을 알고도 *평범한* 결혼 코스로 향하는 대신
자신에게 가족과 같고, 가장 말이 잘 통하는
게이 룸메이트 조지에게 가족으로서 함께 아이를 키우자고 하는
*놀라운* 제안을 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하지만 그보다 그 나이브했던 결정이,
그녀가 그와 사랑에 빠지고 그는 또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면서 복잡하게 엉켜 버리고,
결국 *현실적인*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귀착돼 버린다면 돼 버리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도식적이지 않은 우정관과 가족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물론 어찌 보면 여전히 *헐리우드적*이고 *미국적* 결말일 수는 있겠다 싶은 면도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동성애와 우정에 대해서 이 정도로 나아간 영화도
이 당시에는 별로 없지 않았나 싶다.
요즈음의 사정은 또 좀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 영화 역시 뒤떨어지지 않는다.
대단한 깨달음 같은 것도 없지만,
적당한 선에서 *쿨하게* 해결하는 대신
서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하며 관계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고 사람들이
바닥을 치고 올라와 *새로운* 우정으로 관계를 정립하는 모습이
내게는 늘 가장 신선하고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연인과 헤어진 지 두 주일 지난 후 TV에 나온 연예인이
"우린 정말 쿨하게 헤어졌어요.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한편으로는 가증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왠지 그 사랑은 어딘가 2% 부족했던 것 같고,
그것이 사실이 아닌데도 그들의 *공인*이라는 위치가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말하게 한다면, 가장 내밀한 자신의 상처조차
거짓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삶이 어쩐지 안쓰럽다.
뭐, 사랑이든 관계든 다른 사람의 것에 대해 그 누구도 함부로
지껄여댈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시사한 관계의 가능성이 더 의미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타인들에게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관계를, 그들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은 채
그저 삶으로 매순간 살아내고 있는 이들.
그러면서도 세상을 향해 나를 이해하라고 *강변*하거나 *잘난 체*하지 않아
그것이 더더욱 그저 *다른 삶의 하나*로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이들.
*다름*을, *차이*를, 동물원의 철창 안에 갇힌 낯선 동물마냥 바라보는 대신
굳이 애써 선을 긋지 않은 채로 공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삶.
그런 삶을 *내세우지 않고도* 살아내는 것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키드 님 블로그에서 보고 재밌을 것 같아 해보는 2006 베스트 문답!
정식 문답으로 제안하신 것은 아니지만, 문답으로 탈바꿈시켜도 전혀 손색이 없는,
뭔가 돌이켜 보며 정리가 되는 느낌도 있으면서, 재미도 있는 훌륭한 문답이 아닌가!^^
나 역시 키드님과 마찬가지로 순서는 순위와는 무관.
암튼,
가장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2006 최고의 책 3
사실 책읽기를 업으로 삼은 후부터는 전공 서적들이나 어떤 식으로든 전공과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이 취미란에 "독서"라고 기재하는
것과는 의미가 좀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도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즐거운 순간들도 있었던 것은 사실. 나의
2006년을 남다르게 해줬다고 느껴지는 책은 "고바야시 히데오 평론집", "선(禪) 스승의 편지", 그리고 "삼라만상을 열치다."
고바야시의 책은 아직도 야금야금 읽고 있는 중이라 마무리는 안 됐는데, 문장 하나하나 수월하게 넘어가지지 않는다. 읽기
뻑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각의 촘촘함과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의 견결함이 평론이라는 것을 다시 읽게 해준다. 그리고 "선
스승의 편지"는 "서장"이라고도 알려진 중국 남송 시대의 대혜 스님이 벗이나 제자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편지글 모음집. 그
가운데는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들도 많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에도 이단 논쟁이 있었지만, 종교나 사유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서로와
교유했던 그 흔적 자체가 신선하게 느껴진다. 마지막의 "삼라만상을 열치다"는 김풍기 선생님의 한시 모음 및 해설집 신간.
선생님의 시심이 선생님의 명문에 절묘하게 맞물린 훌륭한 해설서다.
올해의 영화들은 주로 연초에 본 것이 강세인 듯. "아무도 모른다", "원더풀 라이프", "브로크백 마운틴"
세 편 모두 1,2월에 봤던 것 같은데. 아무도 모른다와 원더풀 라이프는 고레에다 하로카즈라는 감독을 발견하게 해 준 영화. 둘
다 뭔가 둔기에 맞은 것과도 같이 서서히 파고들면서도 명치 끝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감각을 느끼게 해준 그런 영화였다.
브로크백 마운틴도 "미국 영화"치고는 간만에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 듯. "아무도 모른다"는 디비디로만 봤지만, "원더풀
라이프"는 디비디로 본 후, 올가을 시네큐브에서 특별상영해줄 때 다시 찾아가서 봤다. "아무도 모른다"도 극장에서 꼭 한 번
보고 싶다.
그런데 "원더풀 라이프"는 그것이 원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판에서는 "내생(Afterlife)"이라고
번역했는데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번역이다.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Life is Wonderful"이라 혹시
그것과 헷갈릴까봐 나름대로 전략을 구사한 건지는 몰라도, 작품이 주는설정상의 은유와 신비감을 확 반감시켜 버리는 정말 즉자적인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그 제목 딱 보고 나면 작품의 설정이 너무 단숨에 들어와 버려서 그것이 어떤 상황일까라고 궁리하며
궁금해하는 단계를 지워버리는 거 같아서 미국 있을 때 디비디 빌려보면서 마음에 안 들었다, 정말.
그리고 벨로와 키드 님 추천으로 "귀향"을 꼭 보고 싶었는데 그것은 끝내 못 봤다. 극장에 끝끝내 가지 않았던 게으름의 소치. 2007년엔 그거 보고 싶고, "수면의 과학"도 꼭 봐야지!
2006 최고의 드라마는 단연 넬의 새 앨범인 "Healing Process"! 최근 들어 이렇게 감동적인 음반 들어본 것도 드문 일이었다. 아마도 그저 2006년 최고의 음반이 아니라 당분간 내 생애 최고의 음반 몇 손가락 안에 꼽힐 듯. 그 외에 "크래커"라는 만화를 위한 사운드트랙이었던 "Cracker - compilation for a bitter sweet love story". 그리고는 줄리아 하트의 "빗방울보들".
물론 2006년에 나온 앨범은 아니었고, 내가 올해 처음 접한 것이긴 하지만, 함께 올여름을 났던 음반이라 내 마음만은
각별하다. 그 외에 하나 더 꼽자면 "클라우드 쿠쿠랜드"가 될 듯. 그러나 "다시" 정도밖에는 반복해서 다시 듣는 것이
없어서(^^;) 빗방울보보다는 다소 비중이 약하지.
뭐, 올해는 반백수 생활을 하다 보니 큰 사고를 저지른 것은 없는 듯하네. 가장 큰 것이야 단연 눈물 젖은 모토로라 레이저 라임. (ㅠ.ㅠ) 몇 년동안 고이 썼던 나의 애니콜을 완전 반으로 동강낸 후, 눈물을 머금고 살 수밖에 없었던 것. 흐음. 그 외엔 진짜 없던가.
그리고 "케이트 스페이드"의 몇 해 전 스페셜 에디션이었던 "Maira Kalman"의 그림이 그려진 토트백을
미국 있을 때 ebay에서 샀다. 가방을 잘 망가트릴 수밖에 없는 평소의 습관 때문인지, 큼지막하고 튼튼하면서도 예쁘다 싶은
가방을 보면 자제를 잘 못한다.-_-; 쯧. 암튼 그 가방 올겨울에 잘 쓰고 있으니 뭐 -핑계를 대자면- 괜찮은 지름신이었던 듯.
그리고 마지막은 아직도 내 손 안에 들어오지 않은 1세대 아이팟 셔플!
아 놔- 그 시카고에 출장가신다는 분 말씀만 없었어도 그냥 한국에서 사는 거였는데, 괜히 동생한테 사놓으라고 해서 이게 뭐냐규-
엉엉- (음... 맥북은 내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며, 지금쯤 아우님이 실컷 쓰고 있을 테니 지름신에서 제외제외-)
2006 최고의 공연 3
루시드 폴 (2006.12.28)
이병우 영화음악 콘서트 (2006.5.20.)
이건 세 개를 꼽는 게 별 의미가 없네. 공연을 달랑 세 개밖에 안 다녀와서. 근데 하나는 초대권 생긴 친구가 초대해 준,
이런저런 사람들 다 나오는 강원도 수재민을 위한 자선음악회. 블라디밀 펠츠만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처음으로 접한 것이 좋긴
했지만 -그는 옷차림이나 감각이 클래식 피아니스트라기보다는 재즈 피아니스트 같은 느낌을 주던 슬림하면서도 멋진 은발의
노신사(?)였다- 전체적으로 인상적인 것은 별로 없었던 공연.
좋았던 것은 "이병우의 영화음악 콘서트"와 며칠 전에 다녀온 루시드 폴의 "노래의 불빛: silent night, nylon night". 둘 다 몇 년동안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엇갈려 계속 못 갔던 공연들. 새삼스레 들어도 둘 다 너무 좋았지만, 이병우는 영화음악 대신 기타 콘서트로 다시 만나고 싶다. 그리고 루시드 폴 새 앨범 기다려진다.
갔다온 것 자체가 별로 없다. 롭스&뭉크 전 다녀왔었는데, 난 의외로 별로였다. 작품 자체가 별로였다기보다 뭔가 보고
나니 심란해서 오래 두고 기억하고 싶지 않았달까. 도대체 무엇이 누군가로 하여금 그토록 하나의 생각에 거의 평생토록 사로잡히게
하는지 궁금해지긴 했지만, 나로서는 보고 나와서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전시회지 싶다.
음, 괜찮았던 것은 '갤러리 현대'에서 했던 "My World in Your Eyes".
(당신 눈에 비친 나의 세계,라는 의미인 것인가.) 알렉스 카츠, 슈테판 발켄홀, 산탈 조프라는 세 명의 각기 다른 예술가들의
목조각과 그림을 접했었는데 슈테판 발켄홀의 거칠면서도 미완인 듯한 목조각과, 인물화에 좀더 방점을 찍긴 했지만 알렉스 카츠의
색채가 강렬하면서 대상이 간결한 풍경화들이 좋았었다.
2006 최고의 싸가지 사건
남에게 한 몹쓸 짓은 다 잊은 것인가. 왜 이리 기억이 안 나냐. ㅎㅎ
없을 리는 없겠지만 기억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하다.^^;
(자신이 싸가지없음을 잊어버리는 싸가지, 이거야 말로 진정한 싸가지가 아닌가! ㅋㅋ)
2006년 한 해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기시감 (deja-vu).
한동안 떠나있다가 돌아온 해다 보니 못 봤던 사람들, 못 갔던 공연들도 몇 년만에 다시 보다 보니 언젠가 보았던 풍경과 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느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몇 해동안 무뎌져 있고 살았던 고통의 순간, 상실의 슬픔을 몇 년만에 다시 느껴야 했다. 물론 동일한 대상은
아니었지만 너무 흡사한, "가슴이 미어진다"는 상투적 표현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다시 살아내야 했던 것이 너무 아팠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강한 "망각력"이 있어 그 고통이 연말이 지나 새해를 맞고 보니 또 다시 무디어지고 둔탁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나의 잔인함 또한 다시 확인하는 기분이다. 어쨌든 돌이켜 보면 올해는 그런 해.
그런가 하면 한동안 심할 정도로 무디어진 나의 감성과 감각을 다시 깨워서 조금은 부지런해지고 끈기를 되찾은 해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도 역시 "기시감"을 느끼게 한 해가 아니었을지.
키드 님의 목록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드라마광인 파스 양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분야는...
"2006 최고의 드라마!"
굿바이 솔로 (너무 좋아하는 장면!)
연애시대
그것은 바로 "굿바이 솔로" 와 "연애시대"!
(이런이런. "봄의 왈츠"에 분노하고 있던 시절 나를 구해준 "연애시대"를 잊어버리다니-. 이렇게 배은방덕할 데가 있나... ㅋㅋ)
그러고 보니 노희경 드라마도 참 오랜만.
나머지는 잠깐 잠깐 재밌게 보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신선함은 없어서 금세 질려버리곤 했다. 특히 사극들. (이를 테면,
"주몽"이나 "황진이".) 제발 특정한 역사관이나 관습적인 미의식 좀 강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군.
키드 님이 거론하신 것 외에도 좀 더 추가하고 싶은데 퍼뜩 생각나는 것이 없네. 조금 더 생각해 보다가 떠오르면 그 때 추가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