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ross the universe 

기나긴 작별

grey room 2005. 6. 19. 17:47


긴 시간 헤맸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나를 묶었던
지독한 악연의 끈에서 놓여났다.
그토록 나를 괴롭혀 오던 나의 자괴감,
지독스런 자의식,
그것을 자유롭게 해주는
한 마디 확언을 들은 후
나는 그 끈이 어느 순간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참 길었다.
참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키겠다고 내내
지독하게 욕심 부려봤었다.
다 끝났다고 수없이 되뇌던 순간에조차
늘 되돌아보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아닌 건 아니었는데.
어찌 되었든.

추억 한 조각 건져보자고 몸부림쳤던 것 같은데,
추억에 대한 미련,
믿음에 대한 환상,
내 자의식을 지키려던 욕심,
다 놓아버리고 나니 어느 새
나는 공기처럼 가벼웠다.
이제 날아도 좋으리만치 홀가분했다.

좋은 추억을 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추억은 그 시절의 화석일 뿐이었다.
지금에 살릴 수 있는 삶의 단서가 아니었다.
그 사람은 그 시절에 살았어야 했던 사람이었고,
그 시절에는 절실했던 사람이었다.
그것이 지금도 반드시 그러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진작에 알았던 것일 수도 있고,
진작에 알았어야 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듬거리고 더디 걸었다면
그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내게는 그저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추억을 주어서 고마웠고,
원망을 놓아버릴 수 있게
이제라도 비로소 제 모습 보여 주어서
그것이 차라리 더 고맙다.

미안하지만,
이제 아무 가식없이 말하건대,
그가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살든 상관이 없어져 버렸다.
그의 행복을 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 같다.
행복을 빌어주기엔, 그는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아예
내 삶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을 원망으로만 채우는 사람과의 추억은
내가 간직하기에도 너무 버겁다.
미안하지만,
이제 더이상 미안하지 않다.

나에게 사랑은 설렘과 기쁨만이 아니었다.
셀렘도 기쁨도 즐거움도 권태도
슬픔도 미움도 질투도 아픔도
미련도 원망도 연민도 무심함도
모두 온전히 지나가야
비로소 끝날 것이었다.
나에게 이제
비로소 하나의 사랑이 끝났다.

이제 그에게 말한다.
내가 어찌 되든 당신 역시 자유롭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어찌 되든 나 역시 자유롭기를.



Posted by papyrus

break-up

grey room 2005. 6. 10. 23:41

세상 모두를 향해 마음을 열고도
단 한 사람에게만은 굳게 닫혀버린 마음.
세상 모두를 향해 마음을 닫아도
단 한 사람을 위해 끝내 열어두고 싶은 마음.

Posted by papy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