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비 유선방송에서 나오길래
이미 너덧 번은 족히 보았을 법한 이 영화를
어색한 성우의 더빙 목소리까지 감수해가며
또다시 끝까지 한 번 다 보았다.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감성이 있고 좋아하는 영화도 제각각이지만
이 영화를 보고서 전혀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나름, 그런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나마 잘 나가다가 맥빠지는 결말이었다고 하는 평은
오히려 양호한 편이고
이 영화를 쳐다도 보기 싫어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교차편집되면서 엇갈리는 두 개의 스토리라인이
헷갈리고 정신없다가 어느 순간에 너무 지루해진다고까지 한다.
이 영화를 너무 재미있게 봤던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내가,
인생을 지배하는 거대한 주제를 다루지 않아도
삶의 소소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포착해내는 영화들을
좀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보니 이 영화도 지루한 줄 모르고
푹 빠져있었던 모양이다^^
내세울만한 거창한 필모그래피라고는 거의 없는 배우지만
특히 남자배우 존 한나(John Hannah)의 따뜻하고 재치있는 유머가 좋았고
귀네스 펠트로가 염색한 금발의 짧은 머리로 나올 때 스타일들 모두 멋졌다^^
작은 관심으로 시작된 호감이 미묘한 감정의 교류들, 사소한 스침들을 통해 발전하면서
연애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과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재미였다.
두 개의 이야기들이 엇갈리는 것이 절묘하지만
잘 설명이 안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말이 사실 맞긴 맞을지도 모른다.
과연 제임스와 사랑을 했던 헬렌의 생활이
마지막에 가서야 제리와 헤어지는 또 다른 헬렌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것이 그녀의 꿈 같은 것이라고 하는지
엄밀히 무엇을 시사하려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에게 있어서 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았다.
우유분단의 극치에 게으름뱅이인 남자친구가
자신을 끝까지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처절한 절망의 시점에서
다시 우연처럼 제임스를 만나게 되는, 일말의 희망이나
겨우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그와의 오해가 풀려 절대 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행복을 향해
발을 내딛게 되는 것 같은 희망의 시점에서
죽음을 맞기도 하는 엇갈린 운명들은
사소한 선택의 차이들로 빚어지는 일상의 현실적 면모를,
그 자체로 삶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