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의 영화들은 매번 보고 나올 때마다
이것보다 더 나은 영화를 과연 다시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의혹같은 것을 품은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서거나, 비디오를 꺼내드는데,
매번 그런 의혹을 넘어서 기대 이상의 작품으로 되돌아오는
놀라운 애니메이션들 투성이다.
물론 픽사에서 자랑하는 놀라울 정도의
현실적인 정교함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니모를 찾아서의 바닷속 풍경이나
바람이나 공기의 흐름에 따른 설리의 털의 변화-
같은 것은 부차적인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사실상 그런 것들이란 아무리 잘 했더라도
실제의 모사일 뿐이라 치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래서인지, 나는 픽사 애니메이션들의
놀랄만큼 완벽한 모사성에 감탄하는 것에는 특별한 감흥이 없다.
인간의 능력이 완벽하다거나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기준이
결국 인간이 얼마나 자연을 완벽할 정도로 흉내낼 수 있는가,
라는 것이라면 자연이 언제나 인간을 능가하는 것으로
남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그렇게 "용쓰고" 만들어낸 1시간 30분의 예술이
자연에겐 그저 "자연스러운" 매순간일 따름이니까.
인간이 자연을 능가해야 한다는 인간주의적 생각은 별로 없지만,
인간은 자연을 베끼기보다 자연과는 다른 미의식이나 감각으로
승부를 할 수밖에 없다고, 혹은 해야한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낫다는 것을 판가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것들이 서로 다른 능력과 장점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느끼고 싶을 따름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들이 가지는 가공할만한 정도의
정밀함과 정교함에 쏟아부어지는 노력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그들이 가지는 장점은 이야기와 캐릭터의
풍부한 깊이와 상상력인 것 같다.
말린, 도리, 니모 등 물고기들이 가지는
제각각의 색채와 성격,
그 주변을 둘러싼 다른 생명체들과의 관계망,
그리고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서의 인간의 초상.
그런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지는 성격들이 어우러지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조화 혹은 충돌들이 무엇보다 생동감 넘친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으로, 겉돌지 않으면서, 치고 들어가는
영화의 전개 방식,
매 순간마다 거의 숨돌릴 틈도 없을만큼,
다음 장면을 더욱더 기대하게 만드는 편집 방식도
정말 대단하다.
난 기본적으로 비관론자인 탓인지,
어떤 눈부신 성공을 보고 나면
늘 그 뒤에 올 그늘을 걱정부터 하지만,
이번엔 이보다 더욱 나아질 것을
안심하고 기대해볼까 싶기도 하다.
이 영화를 김가, 세화언니랑 셋이서
시네코아에서 마지막 상영으로 보고 나와
후추와 마늘(?)-Peppers and Garlic-이라는 곳에서
간단히 요기하면서,
말린과 도리의 대사들
-Are you my conscience? (그럼 네가... 내 안의 나야?)-
등을 한참 곱씹었다. ㅋㅋ
그 대사는 정말... 명대사다-